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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단독] 갓난아이 살해해도 집행유예… 이런 법, 70년 동안 ‘투명 아동’ 키웠다

by 이슈나우1 2023.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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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뒷전인 구시대 법 조항

원하지 않는 임신·초범 등 이유

최근 2년 16건 중 7건 집행유예

 

영아
자료사진 기사내용과무관

 

 

A 씨는 조건만남을 하며 번 돈으로 생활하다가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돈 걱정에 호텔 화장실에서 갓난아이의 코와 입을 막아 살해해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지난해 11월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B 씨는 가족들이 혼전임신을 질책할 것이 두려워 출산 후 영아를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켜 죽였고 지난 3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C 씨는 외도로 생긴 영아를 치욕스럽다는 이유로 한겨울 길가에 버려 살해했다.

 

법원은 2021년 11월 C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출생 미신고 ‘투명 아동’이 최소 2236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영아살해죄 법정형이 턱없이 낮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0년간 바뀌지 않은 ‘구시대 법조항’ 탓에 다양한 참작 사유가 반영돼 자녀를 죽이고도 상당수 부모가 집행유예를 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서울신문이 대법원 인터넷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21년 7월부터 이달까지 2년간 영아살해 사건 재판 16건 중 7건이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실형이 선고된 나머지 9건 역시 징역 2~3년형에 그쳤다.

 

재판부는 “존귀한 생명을 앗아가 죄책이 상당하고 사안이 중하다”면서도 원하지 않는 임신과 갑작스러운 출산, 나이, 초범, 환경 등을 고려해 상당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최근판결
최근판결

 

 

이는 형법상 영아살해죄가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낮게 명시된 데다 재판부가 법조항에 있는 ‘참작할 만한 동기’와 ‘분만 직후’를 포괄적으로 해석한 결과로 풀이된다.

 

형법 251조(영아살해)는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해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 영아를 살해한 때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즉 영아를 살해하는 이유로 자주 등장하는 ‘사회적 인간관계·경제적 어려움·불안한 심리상태’ 등이 ‘참작할 만한 동기’에 적용될 여지가 많아 현실적으로 실형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분만 직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대한 논란도 있다.

 

김영미 아동학대 전문 변호사는 “영아살해죄는 강제추행(형법 298조)과 최대 법정형이 같을 정도로 법정형 자체가 매우 낮다”면서 “재판부가 범행 동기를 많이 고려해 집행유예 판결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특히 “아기의 생명보다 출산한 부모의 상황 등을 더 많이 고려하는 구시대적인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1953년 만들어진 영아살해죄는 개정된 적이 없다.

 

당시엔 각종 질병 등으로 일찍 사망하는 영아가 많아 출생신고도 늦고 영아 인권의 개념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영아살해죄를 다른 살인에 비해 특별히 감경하는 것이 사회안전망이 보강된 현시점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같은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학대 살해죄는 살인보다 중하게 처벌하는데, 영아살해는 최대 법정형인 징역 10년까지 선고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구시대 조항’에 대한 시급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에서도 필요성을 인식하고 법안을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영아살해죄를 폐지하고 살인죄와 같이 취급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사회적 가치관은 계속 변하는데 법은 70년간 변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한 고등법원 판사도 “사법구조상 형사재판은 피고인 중심인데 부모에 의해 살해된 영아를 대변할 목소리가 없기에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투명 아동 수사 공론화를 계기로 법원에서도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곽진웅·박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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